검색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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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연합회 김연갑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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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북간도아리랑답사 김연갑/기미양/남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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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김연갑 이사 아리랑특강 #문경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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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회담 60주년 기념, “아리랑으로 한일관계 재정립하자”http://www.kukak21.com/bbs/board.php?bo_table=news&wr_id=35274 1965년 6월 22일 한일기본조약 체결. 이는 일본이 한국을 한반도 유일의 합법정부로 인정한 것으로써 법적지위, 청구권, 경제협력, 어업문제에 대한 협정 체결이다. 1910년으로부터의 긴 한일관계의 정치적 매듭으로, 전후 격심한 혼란을 겪었지만 한일국교정상화라는 새로운 시대의 출발임은 분명하다. 이로부터 60년을 보낸 오늘, 새로운 개념의 진정한 한일관계 정상화를 문화의 저력으로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 문화 저력에 의한 한일관계 재정립, 이 시대적 과제의 단서는 인류무형문화유산 ‘아리랑’에 의탁할 수가 있다. 다음의 다섯 가지에 근거한다. 하나는 아리랑 역사상 첫 활자 기록을 일본인에 의해 존재한다. 바로 1894년(明治27년) 5월 31일자 『郵便報知新聞』(유우빈호우치신문) 기사 <朝鮮의 流行謠 아리랑>이다. 이는 조선 민중의 정서를 청취하기 윈한 목적으로 조선의 유행요 아리랑에 관심을 둔 결과이다. 이는 1896년 미국 선교사 H.B 헐버트의 <Korean vocal music> 보다 2년 앞선 기록이다. 둘은 한일회담 과정에서 아리랑은 양국 국가를 대신한 사실이다. 한일회담 최고 난제였던 대일청구권 문제 해결로 한일회담의 실질적인 타결이라는 1962년 11월 12일 ‘김종필 오히라(金鍾泌大平) 메모’ 서명 순간, 일본 외무성이 아리랑을 연주해 주었다. 한일 국가 연주를 대체한 것으로 매우 의미가 크다. 이는 1993년 11월 6일 일본 수상 호소카와 모리히로(細川護熙)가 김해공항에 도착했을 때 아리랑으로 환영한 것과 같은 것이다. 셋은 "앞당긴 통일”로 평가되는 남북단일팀 ‘단가 아리랑’ 합의에 따른 단일팀 출전에 공동 국가 아리랑을 처음으로 시행된 곳이 일본이란 사실이다. 1990년 남북단일팀 결성 후 첫 국제경기가 일본 고베에서 개최된 세계탁구경기였다. 이때 분단 46년만에 처음으로 ‘코리아KOREA’란 이름으로 한팀이 되어 ‘한반도기’를 들고 아리랑 연주 속에 출전하여 세계의 장벽 중국을 꺾고 우승을 하였다. 당연히 수상식에서 우승 메달을 받는 순간 아리랑이 국가(國歌)로 연주되었다. 명실공히 아리랑이 한민족의 노래임을 세계에 입증한 것이다. 넷은 1930년대부터 1965년까지 일본에서 유통된 ‘일본아리랑’이 48종에 이른다는 사실이다. ‘일본아리랑’이란 일본에서, 일본 작곡가에 의해 작곡/편곡 되고, 일본 작사가에 의해 작사 되고, 일본 가수가 일본어로 부른 ‘아리랑’ 표제 작품을 말한다. 그런데 이 ‘일본아리랑’이 1931년 ビクター文藝部 編曲, 西條八十八 작사, 小林千代子 노래 ‘アリラン’이 첫 작품이다. 이어 하세가와 이치노(長谷一郞)로 알려진 채규엽이 일본말로 부른 ‘アリランの唄’이 일본은 물론 한국에서도 널리 유행했는데, 1932년 일본 최고의 작곡가 古賀政男 編曲, 佐藤惣之助 作詞, 淡谷のり子와 長谷川一郎(蔡奎燁)의 노래이다. 이로부터 ‘아리랑 야곡(’アリラン夜曲), ‘아리랑 추억(アリランの思ひ出)’, ‘도도이야쓰 아리랑(都々逸アリラン)’, ‘아리랑 부시(アリラン節), ’아리랑고우타(アリラン小唄), ‘아리랑이야기(アリラン物語) 등 ‘아리랑’ 표제의 총 48종이나 된다. 매우 놀라운 사실이다. 어느 나라도 이런 노래의 사연을 갖는 경우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참으로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다섯은 아리랑에 얼킨 숙제 하나가 일본에 있다는 사실이다. 해결해야 할 문제인데, 그것은 우리 영화 최고의 작품이지만 필름이 없어 미스테리로 남아있는 ‘영화 아리랑’ 필름이 일본에 있을 수도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그것은 "대동아전쟁기 폭약 제조용으로 관리하고 있던 일본 한국 대만의 영화필름 속에 나운규 감독 영화‘아리랑’이 포함되어 있다”는 아베 요시시게(阿部善重)씨의 생전 주장에 근거한다. 아베씨는 군속(軍屬)으로 폭약 제조를 하다 1945년 패전이 되자 3인이 불하(拂下)를 받아 소장하게 되었고, 이 사실을 조총련 영화제작소장 여운각에 의해 남북한에 알려진 것이다. 2005년 사망하여 유품이 일본영상센터에 이관되어 "영화‘아리랑’ 필름이 없음이 확인되었다”고 하지만, 생전 증언에는 "영화‘아리랑’ 필름은 불하를 받은 세 사람 중 한 사람이 소장했는데, 고베에 보관하고 있다”고 했기 때문에 여지가 있는 것이다. 특히 아베씨를 나봉한(나운규 선생 차남) 선생과 세 차레나 만난 바 있는 김연갑 아리랑연합회 이사장이 조사한 보고서 ‘아리랑이 보고 싶다’에 의하면 3인이 합동으로 작성한 소장 영화필름 목록은 일본영상센타에서 전혀 모르고 있다는 점에서 존재 여지는 있다고 본다. 이 문제는 다시 접근할 계기를 마련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상의 ‘일본아리랑’과 일본 속의 아리랑을 통해 한국과 일본 간에 많은 대화를 할 수 있음이 분명하다. 특히 아리랑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써 국가 간의 대화 주제임은 분명하다. 이로서 한일회담 60주년을 앞에 둔 시점에서 일본아리랑 주제 학술모임, 양국 공동 타큐멘타리 제작, 한일 교차 공연 등으로 대화를 할 필요가 있다. 인류무형문화유산 아리랑, 국가무형문화재 아리랑, 그리고 일본아리랑을 새로운 한일관계의 중요한 문화 자산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특히 아리랑 정신은 대동 상생에 있다는 사실에서 주목해야 한다. 이제 공동의 실행 위원회 구성으로부터 아리랑을 통한 한일관계 교류의 힘찬 걸음을 내딛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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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하·김연갑 《정선 아리랑》 범우사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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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김병하 아라라요김병하 아라라요 노을녁 광대산 화암 약수대 걸처 앉아 8월 태양 속 녹음에 넘친 한나절 소리공무원 김병하의 아라리를 들었네 소리의 어른 안비취에 머슴 이춘희며 말석의 소인을 향해 나직이 내놓은 소리 정성~ 병하~라는 음감만큼 담백하네 오르는 산길 바람 소리인듯 내리는 계곡 물소리인 듯 아리 아리리요~ 눈이 올라나~ 처연하여 눈길 서편 하늘 향하게 하고 텁텁하여 옛 동무 언약 떠올리게 하는 노래인 듯 푸념인 듯 속삭임인 듯 그대 역광에 여울지는 아리리 음표 그 후 오랫동안 입속에 맴돌다 갔네 아리 아리리 아라리요는 그대 것인가요 광대산 것인가요? 1986년 여름 정선극장 공연과 강연하던 날. 김보성 1986년 3월 1일, 2일에 우리는 참으로도 아름답고도 구슬픈 가락을 뿜어내는 정선 아라리의 고장을 찾아가는 길을 나섰다. 나는 정선 아라리의 기능보유자 김병하 씨를 전날 서울로 오게 해서 우리 집에서 같이 자고 함께 동행했다.고은 시인, 신경림 시인, 인하대 인류학과 김광언 교수 등이 강의와 안내를 맡았다. 서울대 경제학과 변형윤 교수와 서울대 서양사학과 이인호 교수도 참가했다. 연휴라서 아침 일찍 여유롭게 서울을 떠나 강원도의 전통가옥을 살펴보고 오대산의 월정사와 상원사, 평창과 정선을 잇는 비행기재를 넘어 정선으로 들어가는 코스였다.정선 아라리의 서럽기 짝이 없는 음조는 듣는 이들의 가슴을 흔들어놓는다. 김병하 씨의 정선 아라리는 우리들에게 신비감을 전해주었다.눈이 올라나 비가 올라나 억수장마가 질려나만수산 검은 구름이 막 몰려든다명사십리가 아니라면은 해당화는 왜 피며모(暮) 춘삼월이 아니라면은 두견새는 왜 우나아우리지 뱃사공가 배 좀 건너주게씨리골 올동백이 다 떨어진다떨어진 동백은 낙엽에나 쌓이지잠시잠간 임 그리워서 나는 못 살겠네태백산맥의 그 준령을 넘으면서 우리들은 경악했다. 지금은 고속도로가 놓이고 터널이 뚫려 정선의 사람들도 쉽게 나들이를 하게 되었지만, 1980년 중후반에 우리가 찾아가는 정선은 참으로 험준한 성마령 고개를 넘고 넘는 첩첩산중이었다. 고은 시인은 말했다. "나는 아버지의 아들이 아니라 이 땅의 아들이다. 삼천리 산과 물의 대지는 내 아버지고 세 바다는 내 어머니다. 여기서 태어나서 여기서 싸우고 여기서 이룩하고 여기서 묻히는 것을 어느 것 하나 막을 수 없다. 이것이 나의 불가피성이다. 국토는 이것이야말로 민족을 다른 것으로 해체할 수 없는 삶의 항구적인 규범이다.”정선 아라리가 기원되었다는 아우라지에서 사람들은 다시 노래를 듣고 걸었다. 저 지난 시절 정선의 사람과 물건은 아우라지에서 배를 타고 영월에 이르고 다시 송파나루의 노들나루, 그리고 마포나루와 행주나루까지 이르게 되는 것이었다. 이 땅의 인심과 풍속, 정서와 사상은 그 강줄기를 타고 흘러내렸다.정선 아라리 기념비 앞에서 한길역사기행 일행들은 다시 김병하 씨와 그의 딸 김길자 양, 그리고 최능출 씨의 소리를 들었다. 아무리 들어도 더 듣고 싶었다. 험준한 산악으로 외지와 차단된 척박한 땅 정선 고을의 사람들은 지극히 서정적이고 질펀한 해학을 노래로 만들어 냈지만 때로는 저항적인 정신으로 진전되는 것이었다.삼십륙년간 피지 못하던 무궁화 꽃은을유년 팔월 십오일에 만발했네사발 그릇이 깨어지면은 두세 쪽이 나는데삼팔선이 깨어지면은 한덩어리로 뭉친다역사와 삶은 노래를 만든다. 정선의 국토와 민중의 삶은 500수 이상 되는 노래를 만들어내게 했다는 것이다. 이른 봄날, 정선 아라리를 찾아가는 역사가행을 통해 우리들은 이 국토가 창출해내는 노래와 정서를 가슴으로 체험하는 것이었다.(어느 출판인의 비망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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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 명인 정은하 , 추억의 사진 모움[국악신문] http://http://www.kukak21.com/bbs/board.php?bo_table=news&wr_id=338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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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교장 김연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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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아리랑박사 김연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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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아리랑 세계화를 꿈꾸며' 아리랑학회 창립[연합뉴스] '아리랑 세계화를 꿈꾸며' 아리랑학회 창립 http://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01/0005415164?sid=103 (서울=연합뉴스) 황윤정 기자 = 우리 민족을 상징하는 노래 아리랑의 통섭적 연구와 세계화를 기치로 내건 아리랑학회가 창립됐다.아리랑학회는 12일 아리랑에 대한 연구결과를 대중과 함께하고 국제화에 기여하며 미래적 가치를 생산한다는 취지로 학회를 창립했다고 밝혔다.초대 학회장에는 인제대 총장과 대한적십자사 총재를 지낸 이윤구 박사, 부회장에는 이창식 세명대 교수와 이동희 전 단국대 인문대학장이 추대됐다.아리랑학회는 오는 15일 오후 2시30분 종로구 인사동 태화빌딩에서 창립 기념 '아리랑 학술 심포지엄'을 연다.이창식 교수는 '아리랑 연구, 이렇게 하자'를 주제로 발표하고, 김문영 숙명여대 교수는 클래식 음악의 관점에서 '아리랑 세계화'를 위한 의견을 제안한다.박병훈 진도아리랑 보존회회장은 '아리랑 사업, 이렇게 해왔다'라는 주제로 그동안 이뤄진 아리랑 관련 활동을 소개하고, 김연갑 한민족아리랑연합회 이사는 '민족문제, 중국문제, 이렇게 하자'를 주제로 발표한다.이창식 교수는 발제문을 통해 "아리랑의 정체성은 한국 민요의 역사성과 민속성 그리고 현재성 등과 긴밀하게 맞물려 있으며 저항, 상생과 신명의 복합성은 한국 구비민요와 크게 벗어나지 않으면서 청각적 힘이 있다"면서 "한민족 공감대의 울림과 역동성이 오늘날 K팝 저력으로 변주되는 것"이라고 분석하기도 했다.yunzhen@yna.co.kr